추천 코스
「奈良公園周辺エリア」の世界遺産を巡る 1Dayコース
奈良公園周辺の世界遺産に登録されている興福寺や東大寺、春日大社を歩いて巡るコースです。
지역 |
東大寺・奈良公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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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총거리 | 約4.5km |
소요시간 | 約4時間 |
추천 코스
긴테쓰 나라역 종합 관광 안내소
고후쿠지 절
고후쿠지 절
猿沢池 (사루사와이케 연못)의 수면위로 興福寺 (고후쿠지 절)의 5 층탑이 반영되는 아름다운 모습은 나라의 대표적인 풍경입니다. 고후쿠지 절은 710년에 후지와라 후히토씨가 飛鳥 (아스카)에서 헤이조쿄로 전신인 廐坂寺 (우마야사카데라 절)을 이전한 것입니다. 후지와라 가문의 氏寺 (씨족 절)로서, 당시 후지와라 가문이 세를 떨침과 함께 고후쿠지 절도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가람 외에도 一乗院 , 大乗院 등의 子院이 생겼습니다. 또한 고후쿠지 절은 신불절충을 이유로 春日社(가스가사) 와 일체화 하여 가스가사의 실권을 잡고, 1135 년에는 若宮社 (와카미야사) 를 세워 다음해부터 春日若宮おん祭 (카스가 와카미야 온마쓰리) 라는 의식을 시작합니다. 고후쿠지 절은 도다이지 절( 東大寺)과 多武峯 (토노미네)를 제외한 大和 (야마토)의 절과 신사를 말사(末社)로 만듦과 동시에 야마토의 토착무사들에게 승려의 신분을 주어 승병을 늘리는 일에 주력하며 야마토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 1180 년 平氏 (헤이시, 타이라성을 가진 씨족 ) 의 화공(火攻)으로 법당과 탑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그 후 14 년간의 부흥사업으로 재건되었고 1210 년에는 북원당이 완성되었습니다. 1143 년에 창건된 3 층탑도 가마쿠라시대 전기에 재건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1411 년에는 동금당과 5 층탑이 벼락으로 소실되나 동금당은 1415 년에, 5 층탑은 1426 년에 재건됩니다. 이때부터 서서히 절의 세력이 쇠락하다가, 에도시대에 들어서면서 막부의 보호에 힘입어 조금씩 세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1717 년에 금당의 화재로 인해 동금당, 5 층탑, 북원당, 3 층탑 이외의 대부분의 당사가 불타버립니다 . 西國 三十三所札所(서국 33번째 참배소)라는 이유로 남엔당(南円堂)만은 거의 원래의 모습대로 재건되었습니다만, 메이지유신의 신불분리 정책으로 고후쿠지 절은 한때 폐허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1872 년에는 중심의 법당과 탑을 제외한 나머지 서원의 당사나 토담이 헐리고 5 층탑은 매물로 나오기까지 하였으나, 1981 년의 복원허가로 차츰 절의 형태가 다시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8 년부터 장대한 가람의 복원정리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近鉄奈良駅( 킨테츠 나라역 ) 에서 도보 5 분
가스가타이샤 신사
가스가타이샤 신사
석등롱이 늘어선 참배길의 동쪽으로 걸어가 가스가타이샤 신사의 남문에 이르면, 그 안에 御蓋山 (미카사산) 을 등지고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쌓여있는 주홍색의 아름다운 가스가타이샤 신전이 있습니다. 藤原氏 (후지와라 가문) 에 의해 鹿島 (가시마) , 武甕槌命 , 香取 (가토리 ), 経津主命 , 枚岡 (히라오카) 로 부터 祖神天児屋根命과 比売神을 맞이하여, 768 년에 이 네 신들을 모시게 되면서 가스가신사가 성립됩니다. 원래 후지와라씨가 일족의 번영과 사후의 행복을 빌기위해 세웠으나, 얼마후부터 국가에서 제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 헤이안시대에 신사는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고 후지와라 가문은 물론, 황실과 귀족들이 가스가사에 참배를 하게되면서, 무로마치시대에는 足利 (아시카가) 장군도 가스가사에 참배를 합니다. 그 후 가스가사로의 진출을 진행하였던 興福寺 (코후쿠지 절)이 11 세기말에 실권을 쥐게 됩니다. 1135 년에는 春日若宮社 (가스가와카미야사)를 세우고 그 이듬해부터 온마쓰리라는 제를 올리게 됩니다. 카마쿠라시대 이후 가스가사는 伊勢神宮 (이세진구), 石清水八幡宮 (이와시미즈 하치만구) 와 나란히 삼대신사로 불리우며 국민들의 신망을 모으게 됩니다 . 온마쓰리도 14 세기말경부터 국가의 제전이 되어, 이윽고 가스가 신앙은 서민들간에 널리 퍼져 나갑니다. 3,000기의 참배길의 석등롱과 회랑 처마끝에 매달린 등롱들이 당시의 시대상을 말해줍니다 . 남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이 幣殿과 舞殿를 이용한 神拝所이고, 좌측은 直会殿 , 神拝所 앞 정원을 사이에 두고 한층 높은 곳에 중문이 있으며 그 내부에는 본전이 있습니다. 본전은 동쪽으로부터 제 1 전부터 4 전까지의 4동 모두가 가스가 건축양식인 히노키나무의 껍질로 만든 지붕을 얹었습니다.가마쿠라시대부터 20 년 간격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공사가 행해져 왔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863 년에 마지막으로 손을 본 모습입니다만, 헤이안시대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메이지시대 이후로는 지붕수리를 중심으로 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 시내순환버스 春日大社表参道 ( 카스가타이샤 오모테산도 ) 하차 도보 10 분
도다이지 절
도다이지 절
東大寺 ( 도다이지 절) 의 금당인 대불전에서는 나라의 상징인 대불(다이부쓰)을 모시고 있습니다 . 불심이 깊었던 쇼무천황은 부처의 자비로 당시의 정치불안을 해소하고자 도다이지 절을 창건하고, 743 년에는 대불인 노사나불의 제작을 명하며 전 국민에게도 이를 돕도록 호소했습니다. 이에 行基 (교키) 스님도 제자들을 거느리고 협력한 결과, 7 년 후인 749 년에 대불이 완성되고 이어서 대불전도 완성되어 752 년에 개안공양 법회가 행해졌습니다. 공사는 그 후로도 이어졌지만 도다이지 절의 건립은 나라의 총력을 기울인 대사업이었으며, 그 가람은 전례없이 장대한 것이었습니다. 남대문의 정면에는 중문과 회랑을 배치하여 대불전을 에워싸고, 그 전방좌우에 7 층의 동탑과 서탑이 세워졌습니다. 대불전 뒤에는 승방으로 둘러 쌓인 강당을, 동쪽에는 식당을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쪽의 산에는 法華堂 (홋케도 법당)과 二月堂 (니가쓰도 법당)을, 서쪽에는 戒壇院 (가이단인 법당) 그리고 서북쪽에는 正倉院 (쇼소인) 이 있습니다. 동쪽을 제외한 서쪽, 남쪽, 북쪽을 토담으로 에워싸고, 남쪽과 서쪽에는 3 개의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남쪽중앙이 남대문이며, 서쪽에서도 가장 북쪽의 문이 데가이문 입니다 . 헤이안시대 이후에도 전국 사원의 총본산으로서 세력을 유지하였으나, 1180년 平氏 (헤이씨, 타이라성을 가진 씨족) 의 공격으로 대불과 함께 대불전이 불타고 쇼소인, 홋케도 법당, 종루, 데가이문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법당과 탑이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重源 (초겐:카마쿠라시대 초기의 정토승) 을 중심으로 부흥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송나라 공인 陳和卿 (친나케) 의 협력으로 1185년 대불을 복원하고 송나라로부터 새로운 건축양식을 들여와 대불전을 재건하였습니다. 4 년 후에 완성된 남대문은 이 건축양식을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습니다 . 그 후 1200 년에는 새로이 開山堂 (가이산도 법당)이 세워지고, 수년 후 종루가 새로 지어졌습니다. 오미즈토리 (お 水取 り) 로 유명한 니가쓰도 법당은 1667 년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어 2 년 후 재건되었습니다 . 1567년 , 松永久秀 (마쓰나가 히사히데) 와 三好三人衆 (미요시산닌슈) 와의 전쟁으로 인해 대불전과 가이단인 법당을 비롯한 수많은 건물들이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 그 후 스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건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다가 1684 년 막부의 허가로 公慶 (고케) 에 의해 부흥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 1692 년에 대불이 복원되고 1709 년에는 대불전도 재건되었습니다 . 나라시민들도 대불께 참배하는 모임 을 만들어 시주하였습니다 . 그러나 대불전의 재건은 막부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재정이 여의치 않아 창건 당시보다는 규모가 축소되었습니다 . 대불전 정면의 폭이 27m 정도 좁아지게 되었으나 그래도 세계제일의 목조건축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明治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지붕이 기울어지는 등의 심한 손상으로 인해 다시 대대적인 수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 메이지시대가 막을 내린 1909 년이 되어서야 공사에 착수하여 1913년에 준공되었습니다 . 昭和 (쇼와) 시대에는 남대문이나 데가이문 등의 수리도 이루어졌으며, 1978 년에는 대불전 지붕의 기와 11 만장을 새로 바꾸는 공사가 완공되었습니다 . 近 鉄奈良駅( 킨테츠 나라역 ) 에서 도보 15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