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조큐세키 궁터(헤이조큐세키 궁터 자료관・유구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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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조궁(平城宮)은 710년 헤이조 북부의 중앙에 동서 약 1.3km, 남북 약 1km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천황의 거처를 비롯하여 국가의식이나 정치의 장이었던 다이쿄쿠덴과 아사도인 등의 많은 관청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황실과 중앙관청이 있는 관청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헤이조궁의 주변에는  높이 5m의 기와를 얹은 토담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각각 3개씩 총 12 개의 문이 있습니다 . 남쪽의 정면 중앙에 위치한 문이 주작문입니다 . 수도를 나가오카쿄(長岡京)에서 헤이안쿄(平安京)로 옮긴 후에는 이곳이 논으로 변해 오랜 시간동안 잊혀져 왔습니다 . 그 후, 에도시대 말기에 야마토후루이치(大和古市) 봉행소에서 근무했던 키타우라 사다마사(北浦定政)의 실측연구에 의해 헤이조궁의 규모가 밝혀졌으며, 1900년에는 나라현의 측량기사였던 세키노 타다스(關野貞)가 다이쿄쿠덴의 유적을 세상에 알리고 보전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에 나라의 정원수 상인이던 다나다 가쥬로(棚田嘉十郞)가 사재를 털어 보존운동에 힘썼습니다 . 그의 사후인 22년에 다이쿄쿠덴과 아사도인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다음해에 국유지가 되었습니다 . 헤이조규세키 궁터(平城宮跡)의 발굴조사는 1954년 북쪽도로 확장공사에 따른 긴급 조사를 시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59년부터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962년에 킨테쓰(近鉄)가 궁터에 차량검사 전용구역을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 최초의 목간(종이가 없던 시대에 문자를 적은 나무)이 발견되는 등, 이미 큰 성과를 거두었던 지역이었기에 전국적으로 헤이조규세키 궁터의 보존운동이 일어나 1963년 긴테쓰는 계획을 단념하게 되고, 궁터 전역의 국비보조가 실현되었습니다. 1966년에도 궁터의 동부에 국도의 바이패스 계획이 구체화 된적이 있으나, 이 역시 여론의 힘으로 궁터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 지금까지 궁터의 약 3 분의 1 의 조사를 마쳤으며, 궁터나 관청의 유적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습니다. 약 5 만점에 이르는 목간을 비롯하여 토기나 기와, 생활용구 등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있어, 발굴조사가 진척될수록 헤이조궁터는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지하유구, 역사의 보고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 1998 년 봄에는 주작문과 東院(도인) 정원이 복원되었습니다.

자세한 정보

영업시간

오전9:00~오후4:30(입관마감시간 오후4:00)

정기 휴일

월요일(축일의 경우에는 다음날), 연말연시

주차장

있음(무료・유료 있음) ※대수에 한계가 있습니다. 대중교통기관에서의 내원에 협력해 주세요.

요금

입장료 : 무료

요금(단체)

입장료 : 무료

문의 TEL:0742-30-6753/FAX:0742-30-6750
접근 및 버스 정류장 긴테쓰 야마토사이다이지역 도보 10분

지도 및 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