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코스
奈良公園の森林浴と巨樹めぐり
市指定文化財のイチイガシをはじめ、興福寺のクロマツ、春日大社のクスノキ、大仏池のイチョウなど奈良公園の巨樹を巡ります。
지역 |
東大寺・奈良公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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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코스
나라시 종합 관광 안내소
나라시 종합 관광 안내소
JR 나라역 구역사는 2017년 7월 25일, 나라시 종합 관광 안내소로서 오픈했습니다. 외국어 관광 안내, 인터넷에 접속한 관광 정보 검색 코너도 있습니다.
히비노 토비히노
히비노 토비히노
가스가 타이샤 경내비화야(토비히노)는, 가스가 타이샤 오모테산도에 면한 광대한 잔디밭. 사슴이 항상 무리 놀고, 오카야마(미카사야마)의 절호의 뷰 포인트입니다. 현재는 히비노(토비히노)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카스가노(카스가노)라고도 불리고, 오카야마를 바라보는 고대 제사의 땅이었습니다. 「히화노」의 이름의 유래는, 가시마 다이묘진이 카스가의 땅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동행의 야시로 존(야시로의 것)이 길 빛으로서 입에서 불을 토하고, 그 불꽃이 언제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으로부터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해도, 불이 고대의 통신 시설 「분화(노로시)」의 의미이기 때문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만엽의 옛날에는 귀족들이 타구(폴로)를 하거나, 헤이안 시대에도 와카나 따기나 꽃놀이 등, 봄의 놀이의 명소로서 알려져 있었습니다.
가스가타이샤 신사
가스가타이샤 신사
석등롱이 늘어선 참배길의 동쪽으로 걸어가 가스가타이샤 신사의 남문에 이르면, 그 안에 御蓋山 (미카사산) 을 등지고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쌓여있는 주홍색의 아름다운 가스가타이샤 신전이 있습니다. 藤原氏 (후지와라 가문) 에 의해 鹿島 (가시마) , 武甕槌命 , 香取 (가토리 ), 経津主命 , 枚岡 (히라오카) 로 부터 祖神天児屋根命과 比売神을 맞이하여, 768 년에 이 네 신들을 모시게 되면서 가스가신사가 성립됩니다. 원래 후지와라씨가 일족의 번영과 사후의 행복을 빌기위해 세웠으나, 얼마후부터 국가에서 제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 헤이안시대에 신사는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고 후지와라 가문은 물론, 황실과 귀족들이 가스가사에 참배를 하게되면서, 무로마치시대에는 足利 (아시카가) 장군도 가스가사에 참배를 합니다. 그 후 가스가사로의 진출을 진행하였던 興福寺 (코후쿠지 절)이 11 세기말에 실권을 쥐게 됩니다. 1135 년에는 春日若宮社 (가스가와카미야사)를 세우고 그 이듬해부터 온마쓰리라는 제를 올리게 됩니다. 카마쿠라시대 이후 가스가사는 伊勢神宮 (이세진구), 石清水八幡宮 (이와시미즈 하치만구) 와 나란히 삼대신사로 불리우며 국민들의 신망을 모으게 됩니다 . 온마쓰리도 14 세기말경부터 국가의 제전이 되어, 이윽고 가스가 신앙은 서민들간에 널리 퍼져 나갑니다. 3,000기의 참배길의 석등롱과 회랑 처마끝에 매달린 등롱들이 당시의 시대상을 말해줍니다 . 남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이 幣殿과 舞殿를 이용한 神拝所이고, 좌측은 直会殿 , 神拝所 앞 정원을 사이에 두고 한층 높은 곳에 중문이 있으며 그 내부에는 본전이 있습니다. 본전은 동쪽으로부터 제 1 전부터 4 전까지의 4동 모두가 가스가 건축양식인 히노키나무의 껍질로 만든 지붕을 얹었습니다.가마쿠라시대부터 20 년 간격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공사가 행해져 왔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863 년에 마지막으로 손을 본 모습입니다만, 헤이안시대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메이지시대 이후로는 지붕수리를 중심으로 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 시내순환버스 春日大社表参道 ( 카스가타이샤 오모테산도 ) 하차 도보 10 분
세계유산 카스가산 원시림(春日山原始林)
세계유산 카스가산 원시림(春日山原始林)
나라시의 동부산맥에 유달리 아름다운 능선을 그 리고 있는 카스가산 원시림은 해발 498m, 면적 약 250ha의 넓이입니다. 옛날 카스가 타이샤의 신산(神山)으로서 신앙의 장이었기 때문에, 거의 남벌되지 않고 9세기 경에는 금벌령이 내려지는 등 적극적인 보호가 이루어져서 원시성(原始性)을 유지해 왔습니다.
다무케야마 하치만구(手向山八幡宮)
다무케야마 하치만구(手向山八幡宮)
749년 대불을 건립할 때에, 도다이지의 수호신으 로서 모셔졌던 단풍의 명소로서도 유명하며,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가 [이번 여행은 급히 나서서, 신께 드리는 예물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무케산의 홍엽을 바치니 신이시여 부디 받아주소서]란 노래를 만든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보물고(중요문화재)는 도다이지에서 옮겨진 아제쿠라즈쿠리(校倉造)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토다이지(東大寺) - 니가쓰도(二月堂)
토다이지(東大寺) - 니가쓰도(二月堂)
도다이지 절에서 음력 2월에 「슈니에(우물에서 물을 길어 불전에 올리기 위해 본당으로 옮기는 오미즈토리 의식도 함께 행해짐)」 법회가 열리는 것으로부터 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니가츠도(二月堂)는 다이라노 시게히라(平重衡)의 병화(1180년)와 미요시(三好)・마쓰나가(松永) 전투 (1567년) 의 두 차례의 전화(戦火)에서는 화재를 모면했지만 1667년 슈니에 법회를 진행하는 도중 잘못하여 낸 불로 소실되었고, 2년 후에 재건된 것이 현재의 건물입니다. 본존은 대관음, 소관음으로 불리는 2구의 관음상으로, 어느 쪽도 누구에게도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 불상입니다.
토다이지(東大寺) - 남대문
토다이지(東大寺) - 남대문
창건 당시(8세기)의 문은 10세기에 큰 바람으로 무너졌습니다. 현재의 문은 13세기에 도다이지(東大寺)를 부흥한 쵸겐쇼닝(重源上人)이 재건한 것으로, 지금은 없는 13세기 재건의 대불전의 위용을 회상하게 하는 귀중한 유적입니다. 지붕 뒤까지 닿는 대기둥 18대는 21m에 이르고, 문의 높이는 기단상(基壇上 )25.46m나 되며, 대불전에 어울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문(山門. 절의 문)입니다.